<SLK>MY2008 Mercedes-Benz SLK55AMG / 내가 미쳤지.
할리 데이비슨을 팔고, 벤츠를 한대 더 들였습니다.
메르세데스 벤츠 SLK55 AMG. 2008년식, 후기형 프론트 범퍼 외 올 순정.
시작에는 사실 AMG까지 바라지도 않았어요. 여러 이유로 오토바이를 더 이상 타지 않기로 마음먹고(이건 나중에 따로 적어볼게요) 대체품을 찾아보았습니다. 이미 타운카와 CLK가 있는 지금, 제가 보던 차는 작고 민첩한 차였어요. 주차를 할 때마다 민폐가 되지 않게 노력해야 하는 타운카나, 주차장 램프를 나올 때마다 배가 걸리지 않게 적당한 각도를 찾아야 하는 CLK를 잘 보완해줄 차량이요.
처음 후보는 500c였습니다. 그냥 딱 500c. 작은 차체에 캔버스탑, 헤리티지, 이태리 브랜드. 좋은 장난감으로 탈 수 있을 것 같아서요.
아쉽게도 제가 사는 지역에는 괜찮은 매물이 없어서, 꿩 대신 닭으로 눈 동그란 '공도의 카트'를 시승해 보았는데... 큰길 가서 적당히 밟아보고 그대로 유턴해서 반납했습니다.
매력은 있어요. 왜 사람들이 좋아하는지도 알겠구요. 그런데... 제 취향이랑 너무 안 맞더라구요. 하긴 제가 빠릿하고 날렵한 차를 좋아했으면 CLK보다는 E36을, 타운카보다는... '타운카가 아닌 다른 세단'을 골랐겠지요. 아무튼. 한번 타 보고 나니 현타가 빡세게 왔습니다. 와 솔직히 500c가 그것보다 재미가 없으면 없었지 있지는 않을 것 같았거든요.
그 뒤로 프로펠러도 한대 더 시승해보고 했는데, 영 내키지가 않네요. 전부 다 매력이 넘치고 하는건 알지만, 솔직히 할리의 그 경운기스러운 미친 감성을 대체하기에는 2%가 부족해요. 이왕 내리기로 마음은 먹었지만 그렇다 해서 할리를 팔고 매력이 적은 걸 사기에는 돈이 너무나 아까웠어요. 안 사고 말지 차라리.
에이, 팔리면 돈이나 가지고 있자 하던 도중 지름신이 보우하사(?)
금요일에 가까운 지역에서 매물 하나가 나온 것을 발견하고 -> 토요일날 찾아가서 상태 확인하고 -> 수요일날 할리 팔고 -> 목요일날 가져왔습니다. 이 정도로 아다리가 잘 맞아떨어지면 이것은 운명이려니 하고 받아들여야죠.
예상치 못하게 가져오게 된 SLK55AMG입니다. 유러피안 V8의 양대산맥 중 하나라 생각하는 벤쓰.(다른 하나는 삼지창) 키로수 많고 정비는 더 많이 된 매물이에요.
타운카를 가져올 때에 적었던 기준들인데, 이토록 빠르게 조건에 모두 충족하는 차를 가져올 줄은 몰랐습니다.
1) V8 5.4리터.
2) 21세기 차량.
3) 이만한 바디에 V8을 누가 또 넣을까요.
4) 벤츠. ABC 없음. NA SOHC 엔진.
5) 이만한 바디에 V8을 누가 또 넣을까요?(2) 그리고, 뚜껑이 열립니다.
가져온 뒤 며칠 지나지 않아 서울을 왕복했고, 그를 포함해 약 1000km정도를 타 보았습니다. 두 번 만땅 채웠으니 그쯤 탔겠죠 뭐.
느낌은 그냥 예상하던 딱 그 느낌입니다. 벤츠는 뭐라 해도 벤츠이고, AMG는 AMG입니다. 차체가 작다고 해서 고속이 불안하고 그런 건 없네요. 자세제어장치 끄고 파워슬라이드만 안 하면 엔진에 비해 쪼매난 차체가 느껴지지 않아요. 해봐서 압니다. ㅎ... 다신 안 끌 거에요.
제 차가 나온 2008년만 해도 자연흡기 55는 아펠터바흐 공장의 막내였습니다. 윗등급에 들어가던 M113K 엔진들은 슬슬 M156으로 대체되고, M275 엔진이 기함 노릇을 하면서 찬란한 AMG 함대를 이끌고 있었는데요...
지금은 이빵에 골뱅이 하나 붙여놓고 45 AMG라고 하질 않나 일반 모델을 연식 변경하면서 AMG에 은근슬쩍 붙이질 않나... 급기야는 4기통에 모터 달고 63을 붙인다고 하죠. 붉은 돼지가 박물관에서 울겠네요. 물론 최신이 더 빠르고 연비도 좋고 하겠지요. 근데 전기차는 더 빨라요. 빠른 것만 찾을거면 테슬라나 타이칸 사지 누가 내연기관 사나요 요즘 시대에.
뭐 제가 4기통 AMG에 관심 없는 것 이상으로 AMG도 저에게 관심 없겠죠. 빈곤한 투정 한번 뱉어 보았습니다. ㅎㅎ!
이렇게 제 나름의 컬렉션이 완성되었습니다. 왼쪽으로 갈수록 컴포트, 오른쪽으로 갈수록 스포츠.
시대를 역행하는 22기통 13.2리터 SOHC들을 잘 즐겨보겠습니다.